고위층 탈북자 수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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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우린 백 원을 들고 시장 한 끝 매장으로 갔다. 술병을 들고 매만지기도 했지만 무겁게 내려놓고 말았다. 대신 백 원을 50원으로 바꿨다. 교회에서 도망칠 때 공안보다 친구 등을 놓치면 어쩌나 했던 불안이 더 컸기 때문이었다.50원은 내가, 다른 50원은 친구 손에 쥐어주었다. 불가피한 사정으로 헤어지면 어디서 만나고, 만나도 사전에 자기의 안전신호는 무엇으로 보여줄지 구체적으로 약속했다.가장 최선은 절대로 헤어지지 않는 것이어서 교회에서 도망칠 때 상황을 되새기며 뛸 때는 골목마다 무조건 오른쪽으로만 가야 한다는 것까지 약속했다. 유사시 연락처라며 그때 외웠던 신광용의 핸드폰 번호를 나는 아직까지도 잊지 않고 있다.우리는 그때부터 교회를 포기하고 한국기업들을 찾아가기로 했다. 기업인을 직접 만나 우리의 간절한 소원을 아뢰고 그래도 통하지 않을 경우 그 회사가 한국에 보내는 컨테이너에 숨어가자고 계획했다. 그러자면 항구로 가야 했다. 가는 길을 물어보기 위해 신광용에게 전화를 했더니 차라리 연길에서 기업들을 찾아보라고 하였다.연길은 정말 싫었다. 싫어도 백 원밖에 없는 처지에서 다른 방법 또한 없었다. 우리는 먼저 백 원으로 비누 한 장을 샀다. 배고픈 것은 우리 속사정일 뿐 살자면 남들에게 보여 지는 겉모양부터 다듬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잠은 반드시 우물이나 공동수도, 혹은 시냇물이 있는 외진 농촌에서 잤고. 아침이면 시내로 걸어 들어와 한글 간판 기업들을 찾아다녔다. 물론 신광용이가 사 준 선글라스를 똑같이 끼고 말이다.누구든 연길로 가보면 알겠지만 거의나 한글이다. 정작 회사를 찾아들어가 보면 한국 상품만 있지 사람은 없었다. 한국의 대표적 기업들인 SAMSUNG이나 現代, LG를 찾아 이틀 동안 헤맨 적도 있었다. 그렇게 4일이 지나는 동안 내 돈은 물론 친구 돈도 거의 바닥이 났다. 그날도 온 하루 굶주림을 참다나니 빈혈이 났다. 만두가게 앞에서 나는 친구에게 사정했다.“죽을 땐 죽더라도 오늘 네 그 마지막 십 원 쓰자”“무슨 십 원?”“너 십 원 남았잖아. 없는 척 하지 말고 좀 먹자”“정말 없는데?”처음엔 장난치는 줄만 알았는데 친구가 화까지 내며 모든 주머니를 털어 보이기에 나는 한 구석으로 이끌고 가 그동안 먹고 썼던 돈을 일전도 빠짐없이 계산했다. 두 번 세 번 계산해 봐도 틀림없이 십 원이 남았다.“너 이래도 발뺌할거야? 너 지금 나한데 십 원을 숨기려고 하는 거야? 왜 그러는데? 너 혹시 나 몰래 먹은 게 있어? 그랬어?”내 듣기에도 나의 목소리는 크게 들렸다. 그러자 내 시선을 피해 불안하게 여기저기를 둘러보던 친구가 버럭 고함치는 것이 아닌가.“그래 나 돈 썼다. 너 몰래 칼을 샀다!”그러면서 허리춤에서 정말 손칼 하나를 꺼내 바닥에 내동이 쳤다.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한 끼도 달래기 힘든 우리 형편에 굳이 칼이 무슨 소용 있는가? 아니 친구에게 왜 나 몰래 칼이 필요했단 말인가?고개를 쳐드는 친구의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것이 보였다.“우리 한국 못 가, 너무 사정을 모르고 왔어. 한국 사람만 만나면 다 될 줄 알았는데 아니잖아! 우린 지금 꽃제비야. 이러다 잡힐 건 뻔해, 잡히면 너나 나나 살 수 있을 것 같아? 3대멸족이라고! 그래서 차라리 잡힐 바엔. 죽으려고 샀다! 왜?”바닥에 있는 그의 칼을 보니 내가 죽고 싶었다. 그동안 나의 유일한 위안이고 의지였던 친구가 이런 결심까지 품고 있었다는 사실 앞에 온 몸이 물먹은 솜처럼 잦아들었다. 돈 한 푼 없는 것보다 희망마저 잃는다는 것이 가장 두려운 상실감이었다. 나의 침묵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친구가 사정하기 시작했다.“이러지 말고 우리 큰 아버지 집으로 가보자. 다른 방법 없잖아. 어차피 매한가지야, 이러다 죽든, 거기 갔다가 죽든”나는 그때야 친구의 머릿속에 아직도 친척집 미련이 남아있고, 그것이 그를 그토록 나약하게 만드는 원인임을 알았다. 나는 그가 새겨들으라고 마디마다 또박또박 말했다.“너도 들었잖아. 너 같은 친척이 없다잖아”“사촌형도 공안 때문에 당황했을 거야, 살인자가 아니라는 것을 직접 설명하면 다 이해해, 광용이도 말했지? 우리가 아무 것도 모르고 이 짓하는 것보다 그 사람이 나서면 한국 가는 것은 문제도 아니라고. 가보자,”나는 당장 그를 설득하기엔 역부족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루 이틀 시간을 두고 마음을 돌려보기로 했다. 아니 친구로서 이해해주리라 믿으며 농촌에 나가 일단 집을 잡고 생각해보자고 했다.백 원이 있을 땐 어디든 괜찮았지만 무일푼 처지에선 우선 안정적인 숙식장소를 확보하는 것이 다음 일을 추진할 수 있는 선결조건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날이 점 점 어두워져서인지, 아니면 사내가 둘이라 위압감을 느껴서인지 어느 집이나 냉정하게 거절했다. 친구가 한숨 끝에 제안했다.“우린 둘이잖아. 그러니 부담되기도 하고 한편 무섭기도 할 거야, 그러니 각자 집을 구하고 아침마다 이 나무 밑에서 만나자”“만약 못 구하면?”“그래도 내일 만나자, 혹시나 둘 중 한 명이 집을 못 구할 수도 있으니 낼 아침 나올 때 먹을 것을 가지고 오기!”우린 이렇게 헤어졌다. 친구는 약속한 나무의 마을에서, 나는 고개 넘어 이웃 마을로 갔다. 손 흔드는 친구가 안심되지 않았지만 웃는 얼굴이 나를 끝내 가게 만들었다. 두만강을 넘은 후 처음으로 혼자 걷는 길이어선지 그동안의 일들을 정리해 볼 여유가 있었다.한국 갈 수 있는 방법이 정말 없을까? 지금껏 만났던 사람들과 사건들에서 잘 못한 것은 무엇이고 앞으로 활용할 경험 가치는 무엇인가? 아니, 우선 무슨 말로 친구를 설득할 수 있을까? 광용이와 짜고 확 겁을 줘볼까? 어느새 날은 어두워졌고 역시나 찾아간 마을에서도 나는 냉대를 받았다. 그 마을은 이상하게도 개들까지도 어찌나 사나웠던지 도저히 편치 않았다.친구에게 칼이 마침 있으니 만약 함께 동행 했다면 한 마리 잡아먹었겠는데,이 생각에 친구가 갑자기 그리워졌고 그래서 나무마을로 발걸음이 돌아섰다. 그런데 친구는 다행히도 고마운 인정들을 만났는지 나타나지 않았고 결국 나는 나무를 벗 삼아 홀로 보냈다. 아침이 되자 친구가 가져 올 고기만두 생각에 신바람 났다. 그러나 해가 중천에 떠오르도록 친구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 밤에도, 또 다음날 아침도,나는 꼬박 이틀을 굶은 채 그냥 나무를 지켰다.3일째 되는 날, 필히 친구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광용에게 당장 전화를 해봐야겠다는 판단에 마을을 돌며 집 문들을 두드렸지만 그 소원마저도 쉽지 않았다. 정녕 방법이 없을까?사람이란 애간장 탈 때에는 저절로 눈물이 나는 것 같다. 뿌옇게 김이 서리는 선글라스를 벗고 흰 눈 위에 주저앉았는데 그 때 옆을 지나던 한 할머니가 멍해있는 나에게 한마디 던졌다.“조선에서 왔으면 여기 있지 마. 3일전에도 공안이 이 마을을 다 뒤졌어”이틀을 굶어서인지 아니면 친구의 행처를 전혀 알길 없는 허탈함 때문인지 할머니가 하신 그 말의 의미를 모두 깨닫기까지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이곳을 떠야 한다! 그런데 어디로? 나는 일어서며 정신을 가다듬기 위해 혀를 깨물어 보았다. 그랬더니 아픔과 함께 순간 뇌리를 치는 곳이 있었다. 우리에게 세숫물과 함께 밥까지 주셨던 그 노인의 집이 떠올랐다. 나는 다시 용정리까지 걸어갔고 근심했던 것과 달리 쉽게 중학교 교사를 했다는 그 노인의 집을 찾을 수 있었다.“친구는 어디 갔소?”“연길교회에서 전화로 공안을 부르기에 도망치다가 헤어졌습니다.”나는 거짓말 했다. 노인이 소개해준 곳에서 봉변을 당했으니 책임지라는 식이었다. 방으로 들어서기 바쁘게 그 집 전화로 광용을 찾았다. 신호음이 울리는 동안 광용의 첫 음성은 과연 어떨까? 혹시 친구가 받았으면…….하고 기원했다.“지금 어디요?”광용의 거친 질문에 나는 흠칫했다.“나 지금 용정리인데 혹시 친구가 전화 안 왔었어요?”“안 오긴 왜 안와, 이틀 전에 전화 왔었어요.”나는 안도의 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리고 밖에 펴놓은 옥수수를 돌보고 있는 노인의 동정을 살피며 헤어지게 된 경위를 소곤소곤 말했다. 광용의 말에 의하면 급히 만나자고 해서 나갔는데 친구 주제가 말이 아니더라는 것이다.손전등들이 무리로 마을 입구로 들어서는 모습을 보고 황급히 뛰다나니 산을 넘게 되었고 길을 잃고 헤매던 중 이리저리 온 곳이 연길이었다는 곳이다. 그런데 문제는 친구가 친척집을 찾아가겠다고 고집했다는 것이다. 내가 전화 오면 자기가 친척을 데리고 올 때까지 기다리도록 잘 설득하라며 만약 잡히면 그때 도망치라했다는 것이다.“안 된다고 했지요?”“어떻게 그렇게 해요? 그 사람 혼자라도 갈 기세던데, 그러다 잡히면 나도 끝나겠는데,”일단 친구를 집에 숨겨두고 광용이는 다른 사람을 내세워 친구의 작은 삼촌이라는 사람을 만났다는 것이다. 핏줄이 가까워서인지 작은 삼촌은 자기 조카가 절대 살인할 사람이 아니라며 무척 만나고 싶어 했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알리려 집에 전화하니 친구가 목욕하고 밖에 나갔다는 것이다.그때부터 몇 시간 연락이 두절 돼 자기도 지금 바늘방석에 앉은 것만 같다는 게 광용의 마지막 설명이었다. 나는 그동안의 방랑생활에서 자신감이 생겨 잠시 경솔해진 것이니 곧 들어올 것이라며 안심시켰다.그러나 노인의 집에서 잡일을 해주며 3일을 기다렸지만 친구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그 3일 동안 나는 한 번도 심장이 조용히 뛴 적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광용의 다급한 전화가 왔다.“금방 창용 삼촌 아주머니한데서 전화가 왔는데 친구가 잡힌 것 같아요! 공안이 와서 탈북자들 한데 돈을 얼마 받았냐며 창용 아저씨를 싣고 갔대요. 나도 집을 옮길 테니 당신도 빨리 그 곳을 떠요.”나는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구나! 하는 당혹감에 두 무릎이 떨렸다. 붙잡히면 죽을 것이라는 충만했던 각오도 그 순간에는 허무하게 무너졌다. 더불어 나도 이제 곧 공안에서 덮칠 것만 같은 착각이 내 몸 안으로부터 세차게 요동쳤다.6.광용의 전화를 받고나서 나는 서둘러 옷을 입었지만 이내 다시 주저앉고 말았다. 돈 한 푼도 없이 어디로 간단 말인가? 그땐 정말 노인네 집 머슴이라도 될 수 있다면! 눈 감고 이런 짧은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그렇지! 눈이 번쩍 떠졌다. 창용 아저씨밖에 없다. 그는 내 돈 700달러씩이나 받지 않았는가. 주었던 걸 돌려달라면 비열한 짓인 줄 알았지만 내 처지에 무슨 인격을 돌보겠는가? 나는 전화를 들었다.“광용이한데 전화번호를 알았는데요, 창용 아저씨 아직 안 들어왔어요?”“그래,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왜 헤어진 거야?”창용 아저씨 처는 겁에 질려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그것을 안 그때의 나는 정말 몹쓸 인간이었다.“내 말 똑바로 들으세요, 내 친구는 돈 준 사실을 전혀 몰라요, 내가 준 돈이었거든요, 그러니 안심하세요, 그러나 만약(나는 여기서 힘을 주었다.)내가 잡히는 경우 어떻게 될지 몰라요, 그러니 내가 지금 당장 어디든 멀리 떠날 수 있게 광용이에게 전화해서 돈 100달러를 준다고 약속해요.”창용 아저씨 처는 하늘에까지 맹세했다. 하여 나는 연길에서 신광용을 만나 300원을 손에 쥘 수 있게 되었고(나머지는 만약 친구가 오면 주라고 남겨두었다.) 심양으로 가는 버스에도 오를 수 있었다. 노인의 말에 의하면 심양주재 한국 영사부가 있는데 거기를 걸쳐 한국 가는 탈북자들이 많다는 것이다.버스에 올라 털썩 주저앉고 나니 너무도 엄청난 일들이 단 몇 초 사이에 이루어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때에야 친구의 불행에 대해 돌이켜보게 되었다. 정말 잡혔을까? 잡혔다면 지금 그는? 그러나 나는 자신에게 놀랐다. 왜 친구 잃은 슬픔보다 자신을 잃을 공포부터 앞세웠던가? 생사를 약속하고도 나는 왜 자결까지 결심했던 친구를 뒤에 두고 허겁지겁 달아날 궁리부터 했단 말인가? 비겁하고 치사하고 가증스러운 나! 나! 나! 이렇게 되뇌이며 손톱으로 계속 내 살을 꼬집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용서가 안 되고 스스로에 대한 미움을 도저히 표현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시간이 흐르자 광용의 말을 다시 한 번 곰곰이 의미해보고 싶어졌다. 창용 아저씨가 공안에 불려갔다. 친구가 잡힌 것 같다. 이것이 전부일 뿐 확실한 근거는 없지 않은가? 아니 창용 아저씨가 미워하던 그 중국여자가 신고하여 단순한 조사 차원일 수도 있지 않은가? 친구는 살아있으리라. 이 미련으로 마음을 다잡으니 박동소리가 약해지며 조금 편해진 듯싶었다.그것도 잠깐. 나는 이번엔 버스에 불안해졌다. 도 경계선은 물론 군을 하나하나 통과할 때마다 군인들이 올라와 통행증을 일일이 검열하는 북한처럼 이 버스가 검문소 앞에 멎으면 어쩌나 싶어서였다. 6시간 넘게 달리는 동안 그렇게 나는 떨어야 했고 기도해야만 했다. 마침내 야경이 넘치는 도시가 보였다. 그 화려한 중심으로 버스가 당당하게 질주할 때는 친구를 좀 더 기다렸을걸! 저 불빛들을 함께 볼 수 있다면! 하는 후회와 희망이 썰물과 밀물처럼 혈관 속으로 오고갔다. 버스가 멈추기 바쁘게 승객들 중 가장 먼저 내린 나의 눈에 거대한 시계가 보였다. 12시 2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이젠 어디든 갈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의 시간은 그 때뿐, 공안들이 또 서있는 광경에 나는 그만 기겁하여 몸을 숨겨 찾아 들어간 곳이 PC방이었다. 물론 알아서 거기 눌러 앉은 것은 아니었지만 우연 중 다행으로 한 구석 의자에 앉아 밤새 눈을 붙일 수 있었다…….누군가 심하게 흔들어 깨웠다. 화들짝 놀라 벌떡 일어나니 핑크색으로 머리를 염색한 여자가 비명 지르며 뒷걸음 치고 있었다. 내가 몸을 솟구칠 때 떨어뜨린 만두 세 개 때문이었다. 나에겐 목숨 같은 식량인 그 만두들을 똥처럼 혐오스럽게 보던 핑크머리가 줍고 있는 내 등에 대고 욕을 했다. 그때 만두를 집으며 나는 속으로 욕했다. “북한 같았으면 네 머리 꼴만으로도 개년 돼!”나는 그 PC방을 나올 때 간판을 익혀두었다. 훗날에도 또 가리라, 물론 핑크머리년이 없는 곳으로! 밝은 거리를 걷는 나는 연길에서와 달리 발걸음이 가벼웠다. 중국이 이렇게 생겼구나, 이런 곳이 외국이구나. 여권도 없는 공짜 관광이 흡족했다. 북한에서 볼 수 없는 광고들을 신기하게 쳐다보며 걷다나니 불안이 점 점 일어섰다. 한글들이 슬 슬 지워지더니 간판들이 모두가 중국어에 가려졌기 때문이었다. 그 도시가 심양이 아닌 장춘이라는 곳을 알았을 때는 기가 막혔다. 심양은 또 어디란 말인가? 나는 일단 한국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곳부터 찾아가야겠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간 곳이 “고향밥”이란 한글간판 음식점이었다.“심양 가려고 하는데 알려주실 수 없습니까?”식당 아줌마는 골똘히 쳐다보더니 대답 대신 무언가 내밀었다. 한글로 된 관광 안내책자였다. 책이 그렇게 인간에게 필요한 물건인줄 그때 새삼 알았다. 그 책이 가리키는 곳으로 버스터미널을 찾아갔고 그 책 덕에 “썬양”하고 입을 열어 티켓도 구매할 수 있었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김광선에게 전화를 걸었다.“친구소식 없어요? 창용 아저씨는?”광용은 달라진 것이 없다며 자기 사정을 더 길게 털어놓았다. 급하게 친구 집으로 짐을 옮기다나니 여간만 불편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는 동안 나는 그가 잠시 미웠다.“내 친구가 꼭 전화 올 겁니다. 절대로 핸드폰을 꺼 놓지 말아요. 내가 지금 심양으로 가고 있으니 만약 친구가 오면 바로 출발하라고 해요”심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나는 하마터면 환성을 지를 번했다. 관광안내 책자에 심양 주재 한국 영사관 전화번호가 있는 것이었다. 나는 흥분됐다. 장춘 버스와 달리 심양버스는 느려 터진 것만 같아 발을 굴렀다. 빨리 가면 빨리 한국 갈 수 있는데, 심양에서 내리기 바쁘게 전화박스를 찾아 뛰었다. 두만강을 넘을 때부터 이렇게 줄곧 뛰었지만 언제 단 한 번 내 발이라고 느껴본 적 있었던가.전화박스 안에서 번호를 돌릴 때에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신호음이 울리던 끝에 “여보세요”하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자 숨이 컥 막혔다.“여보세요, 한국 영사관이지요?”“네, 누구세요?”“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나는 한국 영사관이 내 전화를 받고 있다는 사실에 너무도 격정이 끊어 올라 정신없이 이 말부터 마구 해댔다.“근데 누구세요?”나는 크게 호흡하고 또박또박 말했다.“저 북한에서 왔습니다. 친구도 함께 왔습니다. 한국 가려고 합니다. 신분증도 가져왔고 정말 북한 사람 맞습니다.”응답이 없었다. 기다렸지만 조용했다. 아니 전화가 끊어져 있었다. 망할 놈의 중국 전화! 나는 전화기를 주먹으로 쾅 쾅 쳤다. 고장 났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다시 뛰었다. 달리는 동안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내 전화를 애타게 기다릴 한국 영사관 직원을 생각하니 그동안의 고생들이 한꺼번에 두 눈으로 주르르 흘러 내렸다.“여보세요”다른 전화박스 안에서 이번엔 내가 먼저 불렀다.“네 누구세요?”“금방 전화했던 사람입니다. 한국 망명을 신청하려고 합니다. 신분증도 가져왔습니다. 공안이 우리를 살인자로 지목하고 수배하고 있습니다. 우린 절대 살인하지 않았습니다.”“여보세요, 다 알겠는데 내 말 잘 들으세요, 이 전화가 그렇게 안전하지 않아요, 무슨 말인지 알겠죠?”그 말에 나는 사방을 황황히 둘러보았다.“여기 심양에서는 한국 가기 힘듭니다. 한국 갈려면 북경 대사관이나 영사관을 찾아가십시오, 우린 도움을 줄 수 없습니다.”“북경 대사관에는 어떻게 가는데요? 어떻게 들어갈 수 있어요?”“그건 탈북자들이 다 알아서 들어가요. 그것까지 우리가 어떻게 알려줘요?전화 오래 못해서 그러는데 이만 끊겠습니다.”나는 전화를 그냥 들고 서있었다. 해외공관들의 전화가 주재국 정보기관들의 도청에 노출돼 있고, 그래서 혹시나 공안이 이쪽으로 올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움직이지 못했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어떤 시련을 넘으며 왔는데? 설명을 잘 하지 못한 내 탓인 것만 같아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이번엔 받지 조차 않았다.마치도 그 침묵은 교회에서 중국인들이 우리를 쫒던 욕질 같았고 하루 밤만 재워달라고 애원하는 우리를 보고 쾅 닫아버리던 대문 같았다. 대한민국이 이다지도 먼 단 말인가? 대한민국이 우리 탈북자들을 구출할 권한이 이렇게까지 없었단 말인가? 전화박스 밖으로 나올 때 세상 끝으로 누가 날 밀어버리는 것만 같아 서러움이 확 북받쳤다. 스스로 알아서 가야 한다는 영사관 직원의 그 말에는 북한 주민인 내가 전혀 없었고 그래서 내 보기에도 나란 존재는 이국의 하늘 밑을 떠도는 작은 먼지 같았다.나는 그날 주머니에 남아있는 마지막 돈으로 술을 마셨다. 한 잔 두 잔 먹다나니 연길에서 친구가 술을 사자고 말했던 그 상황이 그때가 아니라 지금 같았다. 친구가 그리워졌다. 제발 살아서 나에게로 와주었으면, 제발 내일은 그와 함께 새롭게 시작했으면,아파트 옥상 위에서 그렇게 자고 일어난 나는 아침이어도 갈 데가 딱히 없었다.아래를 내려다보니 친구의 칼이 생각났다. 아직도 친구는 칼을 가지고 있을까? 만약 정말로 공안에 잡혔다면 그 칼을 원했던 것처럼 사용했을까? 이 생각까지 이르고 나니 나는 어디든 가야겠다는 결심이 서게 됐다. 그렇다. 북경으로 가자. 남들도 알아서 간다는 길을 내가 왜 못 가겠는가. 가자고 온 것이 아닌가. 여기까지 살아오지 않았는가.나는 지붕 바닥 한쪽에 고여 있는 눈 녹은 물로 세수를 했고 옷도 툭툭 털었다. 그리고 시를 쓸 때와 같은 영감으로 사색했다. 사람도 땅도 모두 낯 설은 저 밑으로 내려가면 내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 계단을 내려 현관까지 가는 동안 아무리 머리를 굴려보아도 결론은 오직 하나였다. 사람이었다. 그것도 말부터 통하는 조선족을 찾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만난단 말인가? 중국말로 꽉 찬 이 심양에서! 그때 문득 좋은 방법이 떠올랐다.나는 우선 조용한 골목길에 섰다. 그리고 행인들을 행해 조용히 불렀다. 남자가 지나가면 “아저씨!” 여자가 지나가면 “아가씨!”했다. 중국인이라면 그냥 지나갈 것이고 조선족이라면 틀림없이 반사적으로 돌아볼 것이리라. 그렇게 한 시간 또 한 시간, 어느덧 시간이 흐르고 흘러 해가 점점 서쪽으로 기울어졌다. 세끼를 굶은 이 채로 또 하루가 지나면 어쩌나. 그 조바심에 애가 타는데 그때 저만치서 26살 돼 보이는 여자가 내 쪽으로 오고 있었다. 나는 앞에서 부르면 말을 알아듣지 못해도 목소리에 반응하기 때문에 그 여가 등을 보일 때쯤 불러보았다.“아가씨!”그러자 그 여가 걸음을 멈추었다. 돌아섰다. 그러더니 말했다.“저를 불렀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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