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왕’ 박태준 명예회장이 남긴 숱한 일화] 우향우와 제철보국 포스코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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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민족사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것이다. 실패할 경우 우리 모두 우향우하여 영일만에 투신해야 한다.” 박태준 명예회장의 이처럼 비장한 정신과 의지는 온갖 고생을 겪고 있던 건설요원들을 감동시켰다. 그들 사이에서는...


뉴스룸(舊 포스코신문)(상세보기) | 홍보채널 | 포스코 바로가기본문영역 바로가기로그인뉴스레터공지사항고객지원LanguageENGLISHCHINESEJAPANESELanguage포스코회사소개개요비전/핵심가치역사브랜드브랜드이야기CICEO인사말CEO's MessageCEO 활동기업지배구조선진형 기업지배구조이사회기업지배구조 관련정보포스코 그룹사그룹사 안내철강E&C무역ICT에너지소재·화학지원포스코 해외 법인GlobalAsiaAmericaEurope&Africa찾아오시는 길사업장 소개지역별/용도별 검색윤리경영윤리규범CEO 메시지윤리헌장실전지침윤리실천활동윤리경영 시스템운영기업윤리 교육활동비윤리 예방활동대외활동 및 성과윤리상담센터비윤리신고센터신고보상제도신고하기처리결과확인클린 포스코 시스템목적/운영절차세부기준제품/기술포스코 제품열연제품후판제품선재제품냉연제품용융아연도금제품전기아연도금제품전기강판제품자동차소재제품스테인리스스틸제품티타늄제품 마그네슘제품 용융알루미늄도금 포스코 기술파이넥스 공법스트립캐스팅연연속압연기술조업기술CEM 공정철강 생산 공정생산공정 체험E-Businesse-Salese-Procurement투자자정보IR 활동공고주식정보시세정보지수비교해외 DR거래동향경제동향주주현황배당내역재무정보재무제표신용등급IR 자료실감사보고서사업보고서Annual ReportIR Meeting 신청지속가능성지속가능경영 체계지속가능경영 체계그룹사 CSR 진단리스크관리이해관계자관련기관 활동환경경영포스코패밀리 환경경영방침환경경영기후변화/에너지고객고객가치 창출마케팅전략/솔루션마케팅품질경영공급사슬관리중소기업 동반성장중소기업 상담공정거래직원직원 보건/안전조직문화인재육성체계사회공헌보고서포스코 보고서탄소보고서사회공헌 보고서분쟁광물활동소식홍보채널뉴스룸(舊 포스코신문)뉴스레터포스코 SNS미디어 라이브러리TV광고인쇄광고홍보영화디지털 브로셔부가서비스다운로드포스코제품/기술지속가능성투자자정보홍보채널문화행사문화행사 안내포항광양서울포스코이벤트진행중 이벤트지난 이벤트견학신청견학안내포항제철소광양제철소포스코역사관견학 예약 확인/변경견학 소감인재채용하위메뉴 모두 보기하위메뉴 모두 닫기포스코회사소개개요비전/핵심가치역사브랜드브랜드이야기CICEO인사말CEO's MessageCEO 활동기업지배구조선진형 기업지배구조이사회기업지배구조 관련정보포스코 그룹사그룹사 안내철강E&C무역ICT에너지소재·화학지원포스코 해외 법인GlobalAsiaAmericaEurope&Africa찾아오시는 길사업장 소개지역별/용도별 검색윤리경영윤리규범CEO 메시지윤리헌장실전지침윤리실천활동윤리경영 시스템운영기업윤리 교육활동비윤리 예방활동대외활동 및 성과윤리상담센터비윤리신고센터신고보상제도신고하기처리결과확인클린 포스코 시스템목적/운영절차세부기준제품/기술포스코 제품열연제품후판제품선재제품냉연제품용융아연도금제품전기아연도금제품전기강판제품자동차소재제품스테인리스스틸제품티타늄제품 마그네슘제품 용융알루미늄도금 포스코 기술파이넥스 공법스트립캐스팅연연속압연기술조업기술CEM 공정철강 생산 공정생산공정 체험E-Businesse-Salese-Procurement투자자정보IR 활동공고주식정보시세정보지수비교해외 DR거래동향경제동향주주현황배당내역재무정보재무제표신용등급IR 자료실감사보고서사업보고서Annual ReportIR Meeting 신청지속가능성지속가능경영 체계지속가능경영 체계그룹사 CSR 진단리스크관리이해관계자관련기관 활동환경경영포스코패밀리 환경경영방침환경경영기후변화/에너지고객고객가치 창출마케팅전략/솔루션마케팅품질경영공급사슬관리중소기업 동반성장중소기업 상담공정거래직원직원 보건/안전조직문화인재육성체계사회공헌보고서포스코 보고서탄소보고서사회공헌 보고서분쟁광물활동소식홍보채널뉴스룸(舊 포스코신문)뉴스레터포스코 SNS미디어 라이브러리TV광고인쇄광고홍보영화디지털 브로셔부가서비스다운로드포스코제품/기술지속가능성투자자정보홍보채널문화행사문화행사 안내포항광양서울포스코이벤트진행중 이벤트지난 이벤트견학신청견학안내포항제철소광양제철소포스코역사관견학 예약 확인/변경견학 소감인재채용고객지원이용안내공지사항FAQ기업정보홍보사회공헌투자자정보제품/기술정보기타이용문의검색센터업무별 연락처사이트맵관련사이트RSS서비스신문고개인정보처리방침이용약관영상정보처리기기 운영 관리 방침포스코회원로그인회원가입아이디찾기/비밀번호 재발급 검색어 입력 홍보채널뉴스룸(舊 포스코신문)뉴스룸(舊 포스코신문)뉴스레터포스코 SNS미디어 라이브러리다운로드문화행사포스코이벤트견학신청홍보채널포스코뉴스뉴스룸Smart POSCO Family뉴스 게시판[‘철강왕’ 박태준 명예회장이 남긴 숱한 일화] 우향우와 제철보국 포스코정신 세우다카테고리포스코 기획날짜2011-12-15 크게보기 +작게보기 - “민족 숙원사업에 동참한다는 긍지와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선조들의 피값으로 짓는 것이다. 제철소 건설에 실패한다면 우리 모두가 민족사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것이다. 실패할 경우 우리 모두 우향우하여 영일만에 투신해야 한다.” 박태준 명예회장의 이처럼 비장한 정신과 의지는 온갖 고생을 겪고 있던 건설요원들을 감동시켰다. 그들 사이에서는 ‘우향우 정신’이라는 말이 퍼지기 시작했고, 점차 건설현장에서 가장 친숙한 구호가 됐다. ‘우향우 정신’은 모든 건설 요원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힘을 북돋워주었고, 그 이후로도 포스코인들은 어렵고 힘들 때마다 ‘우향우’를 외치곤 했다. 이처럼 박태준 명예회장의 일화는 직원들을 감동케 했고, 지금까지 포스코 임직원의 마음속에 면면히 흐르고 있다.박태준 명예회장의 순수한 열정과 사명의식은 ‘우향우 정신’과 ‘제철보국’의 전통,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다는 도전정신, 책임의식과 완벽주의, 철저한 투명경영, 인간존중의 경영이념으로 승화돼 글로벌 포스코의 정신적 자산으로 지금도 면면히 계승·발전돼오고 있다.기공식에 불참한 이유 대한국제제철차관단(KISA)과 제철사업 계획을 놓고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가 계속되고 있었다. 마음이 급한 우리 정부는 1967년 4월 6일 일단 가협정을 체결하고 협상을 계속했다. 어느 정도 의견 접근이 이루어지고 우리 정부가 건설계획안을 확정하자, 1967년 9월 25일 KISA 측에서도 ‘종합제철사업에 대한 기본협정 초안’을 내놓았다. 당시 대한중석 사장이던 박태준 명예회장은 중석 수출협상을 위해 런던 출장 중이었다. 9월 30일 귀국한 그는 공항에 내리자마자 곧바로 부총리실로 불려갔다. 장기영 부총리는 우선 종합제철추진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며 축하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펜과 함께 자신이 이미 서명한 기본협정안을 내놓았다. 서명하라는 것이었다. 박태준 명예회장은 완곡하게 거절했다. 면밀하게 내용을 검토하지도 않고 무턱대고 서명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저는 아직 정식 발령을 받지도 않은 상태입니다. 원문을 모두 읽고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면밀하게 검토한 뒤에, 그러고 나서 서명하겠습니다.” 장 부총리는 예상치 못한 일인지 얼굴이 벌개졌다. “이보시오 박 사장, 기공식이 3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어쨌든 기공식은 예정대로 진행시켜야 하지 않겠소? 일단 서명하시고 기공식이 끝난 뒤에 천천히 검토하는 것이 어떻겠소.” 장 부총리는 다시 서명을 재촉했다. 그러나 박태준 명예회장은 단호했다. 추진위원장이라면 제철소 건설과 관련해 모든 책임을 져야 했다. 덜컥 서명부터 해버리면, 혹시라도 포함돼 있을지도 모르는 불리한 내용을 그대로 따라야 하는 것 아닌가. 박태준 명예회장은 곧바로 협정안 사본을 들고 김흥한 변호사를 찾아갔다. 기본협정안의 법률적 문제들을 검토하기 위해서였다. 협정안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건설자금 동원 부분. 협력한다는 내용만 있을 뿐 각 회사의 배분율, 지원시기, 책임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았다. KISA로서는 얼마든지 발뺌을 할 수 있는 약정이었다. 박태준 명예회장의 마음은 무거웠다. 이렇게 허술한 계약으로 과연 종합제철소 사업을 성공할 수 있을지, 걱정스러운 일이었다. 이틀 후, 추진위원장 자격으로 기공식에 참석하라는 장 부총리의 전화를 받았다. 난처한 일이었다. 계약서의 허점을 알면서 무조건 기공식에 참석할 수는 없었다. 실질적 보장은 하나도 없으면서 기공식만 성대하게 치르는 것은 명백한 잘못이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거절했다. “박 사장, 이러지 마시오. 각하를 실망시켜서는 안 됩니다.” 그날 오후, 박태준 명예회장은 청와대로 불려갔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그를 보자마자 나무랐다. “기공식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그랬다며? 왜 그래? 정부가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는 걸 알면서 왜 자꾸 반기를 드는 게야?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내일 당장 포항으로 내려가 기공식을 끝마치고 올라와.” 난감한 일이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협정안의 허점들을 보고했다. 박 대통령은 믿기 어렵다는 표정이었다. 계약서를 검토해보겠다고 약속하고 그를 내보냈다. 1967년 10월 3일, 포항에서는 기공식이 성대하게 열렸다. 박태준 명예회장은 끝내 참석하지 않았다. 철저하고 완벽하게 일을 처리한다는 소신 때문이었다. 또한 민족의 장래를 좌우할 대사인 만큼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만 했던 것이다. 한편 장 부총리는 포항기공식장으로 가는 도중에 해임되었다. 처음부터 KISA와 기본계약 협상을 벌여왔던 경제기획원은 모든 업무를 대한중석에 이관했다. 청탁은 절대 용납 못해 포스코(당시 포항종합제철)가 1968년 4월 1일 창립됐지만 박태준 명예회장은 수많은 청탁에 시달렸다. 당시 여당이던 공화당의 막강한 실세들이 끊임없이 그를 괴롭혔다. 당시 박태준 사장은 ‘정치 청탁과의 절연’을 선언하고 이를 밀고 나갔다. 그러나 쉽지 않은 일이었다. 협박과 수모를 견뎌야 했다. KISA와의 협상이 난항을 거듭하면서 자금문제로 어려움을 겪던 포스코는 1969년 12월 일본과 기본협약을 체결하고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됐다. 모두 성공에 대한 확신을 바라보며 건설작업에 매진하고 있었다. 그 무렵, 포항제철 서울사무소에는 인사청탁과 납품업자를 추천하는 전화가 폭주하기 시작했다.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비서실장이 포항사무소로 박태준 명예회장을 찾아왔다. 그는 머뭇거렸다.“저, 서울사무소에 문제가 생겼습니다.”“뭐야? 사고라도 났나?”“사고가 난 건 아니고, 날마다 여기저기서 인사청탁과 납품업자를 도와달라는 전화가 오는 바람에 업무를 보지 못할 정도입니다.”“누가 그런 짓을 해? 명단 이리 줘보게. 이 일은 나한테 맡기고 자네는 어서 일이나 하게.” 박태준 명예회장은 자격이 없는 사람이나 업자가 발을 붙이게 되면 반드시 부실기업이 된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비서실장은 여전히 머뭇거리며 서 있었다. “잘 알겠습니다만, 이것만은 무시하기가 좀….”그는 안주머니에서 편지 한 장을 꺼냈다. 청와대의 막강 실세 박종규 실장의 편지였다. 당시 그는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고 할 만큼 막강 권력의 소유자였다. 모든 사람이 그 앞에서 굽실거렸다. 박태준 명예회장은 편지를 뜯어보지도 않고 북북 찢어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이 일은 내가 책임질 테니까 나가봐.”조 실장은 당황해 말을 더듬으며 그 편지가 박종규 실장이 보낸 것임을 상기시켰다. 박태준 명예회장은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쳤다.“KISA가 차관을 거절해서 포철의 장래가 불투명해졌을 때 그 사람들은 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나? 그런데 이제 와서 이런 짓이나 하고 있어? 나는 대한중석을 맡았을 때부터 지금까지 납품이나 인사문제로 어떤 청탁도 받아들인 적이 없네. 명심하게!”박태준 명예회장의 뜻이 이렇게 확고하다 보니 포스코에는 제아무리 막강한 권력자의 청탁도 먹혀들지 않았다. 그러나 박태준 명예회장은 온갖 종류의 청탁과 압력에 시달렸으며, 거절한 대가로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많은 이가 앙심을 품고 기회만 오면 그를 궁지에 몰아넣으려 했다. 권력 실세의 청탁과 헌금요구를 완강히 거부하는 것은 당시 사정으로 볼 때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는 ‘한번 밀리기 시작하면 포항제철은 끝장’이라는 소신을 결코 굽히지 않고 위험한 곡예를 하듯 자신의 일만 묵묵히 해나갔다. 그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제철소를 성공리에 건설하고 철을 생산해내는 일이었던 것이다. 원료구매 성공기 제강공장 등 제철소 기초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던 1971년, 박태준 명예회장은 주원료인 철광석과 코크스용 석탄을 미리 확보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국내 자원은 거의 없는 실정이므로 대부분 수입에 의존해야 했다. 높은 수수료를 감안하면 독자적으로 원료를 구매할 수밖에 없었다. 우선 세계 주요 광산회사에 원료 공급 가능성을 타진했다. 호주·미국·인도 등 모든 원료 공급회사를 알아봤지만 한마디로 거절당했다. 원료대금 지급능력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박태준 명예회장이 직접 나서기로 했다. 첫 관문은 서울의 호주대사관. 다행히 호의적이던 호주대사의 주선으로 현지에서 원료 공급업자들과의 회합이 마련되었다. 그렇지만 협상이 쉽지 않을 것은 분명했다. 자료가 필요했으나 아직 기초공사 중이라 각 공장이 들어설 부지 위에 커다란 간판을 세우고 영문자로 각 공장의 이름을 크게 쓴 후 사진을 찍게 했다. 이 사진으로 포스코의 미래를 설명할 생각이었다.호주의 광산주 앞에서 그는 준비해간 자료들을 하나하나 보여주며 비전을 설명했다. 하지만 광산주들은 뜨내기 약장수를 대하듯 비아냥거렸다. 있는 힘을 다해 설득하기를 며칠.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귀도 기울이지 않았다. 그는 마지막 수단을 동원했다. 준비해간 육군 소장 정복을 꺼냈다. 영국 전통을 따르는 호주인들은 장군을 무척 존경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던 것이다. 장군복을 차려입고 다시 광산주들을 만나러 갔다. 놀라운 일이었다. 장군복과 어깨 위에 달린 별을 보고, 그들이 우호적으로 바뀐 것이다. 이제 분위기는 박태준 명예회장 쪽이었다. 그는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장래 계획과 공사 진도를 설명하는 한편, 태평양지역의 상호협력과 공동번영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들은 긍정적 입장으로 돌아섰고, 모든 손해는 대한민국 정부가 책임진다는 내용의 손해배상 각서를 쓰기로 하고 철광석 공급 약속을 받아냈다. 더구나 이들 회사는 일본에 공급하는 것과 동일한 가격에 공급하겠다고 제의했다. 박태준 명예회장의 의지가 성취해낸 일이었다.▶ 박태준 명예회장이 호주 광산주를 설득하기 위해 준비한 제선공장 입간판 사진.(1971.7)건설비상 현장의 야전사령관 1971년 8월, 박태준 명예회장은 호주에서 원료 구매협상을 마치고 일본에 들렀다. 설비공급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서였다. 미쓰비시상사의 우쓰미 기요시 중공업 담당부장은 포항 열연공장 건설의 기초공사가 3개월 이상 지연되고 있다며, 설비 공급계획을 재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호주로 떠나기 전, 1개월 정도 지연된 공기를 만회하라고 강력 지시했는데, 3개월이나 지연됐다니…. 박태준 명예회장은 반드시 공기를 만회하겠으니 계획대로 설비를 인도하라고 호언하고 급히 귀국했다. 열연공장은 첫 번째로 착공한 시설이었다. 이 공사가 늦어지면 연쇄적으로 다음 공사도 늦어지고, 생산원가가 올라가 가격경쟁에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 눈앞이 캄캄했다. 현장에 도착한 박태준 명예회장은 정명식 토건부장과 심인보 건설공정실장에게 보고를 받았다. 우쓰미 부장의 말과 일치했다. 박태준 명예회장은 공사진도표를 꼼꼼하게 검토했다. 모두 숨을 죽이고 있었다. 박태준 명예회장은 공사진도표 맨 위에 붉은 펜으로 ‘9월-하루 700입방미터’라는 글씨를 썼다. “9월에는 무조건 하루 700입방미터씩 콘크리트를 타설하시오.” 그러고는 입을 다물었다. 지금까지 타설해온 하루 평균의 두 배가 넘는 엄청난 양이었다. 정 부장과 심 실장은 조심스럽게 “어려울 것 같다”고 입을 열었다. 박태준 명예회장은 소매를 걷어 올렸다. “우리는 사느냐, 죽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소. 지금은 비상사태요. 건설비상 말이오. 이것은 공사가 아니라 전투요. 전장에 나선 이상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무조건 이번 전투목표를 달성하도록 하시오.” 건설비상이었다. 24시간 돌관 작업(주야간 공사진행)이 시작됐다. 부소장급 이상 관리자들을 책임자로 하는 팀을 조직하고 교대로 근무, 24시간 내내 작업이 계속됐다. 인근 지역에 있는 레미콘이 모조리 동원됐다. 레미콘은 잠시도 쉬지 않고 분주히 움직였다. 조명탑의 불은 매일 밤마다 건설현장을 환히 비추었다. 박태준 명예회장은 작업복 차림으로 지휘봉을 휘두르며 공사를 직접 감독했다. 폭우가 쏟아지는 날에는 비옷을 입고 인부들과 함께 밤을 새웠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면 차를 보내 인부들을 데리고 나오게 했다. 그러나 박태준 명예회장은 끝까지 24시간 작업을 밀고 나갔다. 인부들은 현장에서 쓰러져 잠시잠시 눈을 붙였다. 1일 책임량 700㎥를 조금 채우지 못한 감독들의 정기 승급은 일시 중지됐다.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밤이었다. 이곳저곳 점검하던 박태준 명예회장은 도로 옆에 트럭 몇 대가 일렬로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맨 앞차를 들여다 보니 피곤에 지친 운전수가 세상 모르고 자고 있었다. 줄줄이 마찬가지였다. 박태준 명예회장은 그들을 흔들어 깨웠다. 안쓰러웠지만, 국가의 장래가 달려 있는 순간이었다. 1971년 10월 31일, 드디어 건설비상 마지막 콘크리트를 쏟아부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만세’를 불렀다. 해낸 것이다. 건설요원들은 전쟁보다 더한 두 달, 혹독한 순간들을 이겨냈다. 언제나 현장에서 동고동락하는 야전사령관, 박태준 명예회장의 지시를 기꺼이 따랐다. 박태준 명예회장의 믿음과 집념은 건설요원들의 가슴을 불살라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것이다.▶ 처음 생산한 열연코일에 ‘피와 땀의 결정’이라고 휘호하고 있는 당시 박태준 사장.(1972.10.3) 제철장학회와 리베이트 1971년 초, 박태준 명예회장은 갑자기 들어온 거금 17만 달러를 놓고 고민에 빠져 있었다. 이 돈은 그야말로 ‘공돈’이었다. 보험회사의 리베이트였던 것이다. 포항제철은 꽤 비싼 보험에 들어 있었다.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산업재해나 사원 복지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지출이었다. 그런데 거의 사고가 없이 한 해를 보내자, 보험회사가 사례비를 제공한 것이었다. 이 많은 돈을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할까. 박태준 명예회장은 며칠을 고민하다 청와대에 대통령 접견을 신청했다. 그동안 많은 격려와 도움을 준 박정희 대통령에게 갖다드리기로 결심을 굳힌 것이다. 청와대에 들어가 박 대통령을 만난 박태준 명예회장은 호기롭게 수표를 꺼냈다. “각하, 나라를 위해 써주십사 하고 기부금을 좀 가져왔습니다.”박 대통령은 깜짝 놀라며 그를 바라봤다. “아니, 포철은 정치헌금을 절대로 내지 않겠다고 말하지 않았던가?”박태준 명예회장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리고 회사 돈이 아닌 불로소득이니 나라를 위해 써달라고 말했다. 박태준 명예회장의 설명을 들은 박 대통령은 머리를 갸웃하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이 리베이트는 어떻게 해서 생긴 건가?” 보험사고나 보험청구가 없을 때 모든 기업이 이 같은 리베이트를 받는다는 사실을 안 박 대통령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수표를 도로 박태준 명예회장에게 돌려주었다.“성의가 고맙네. 임자의 마음은 알았으니 이 돈은 도로 가져가서 임자 마음대로 쓰게나.” 박태준 명예회장은 몇 번이고 받아달라고 부탁했지만 박 대통령은 단호했다.“포철에 주는 내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가져가.”회사로 돌아온 박태준 명예회장은 임원회의를 열었다. 돈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결정하기 위한 것이었다. 다른 회사들처럼 비자금으로 챙겨 두자는 의견이 우세했다. 그러나 박태준 명예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이 돈은 더 이상 리베이트가 아니었다. 박 대통령의 선물이었다. “장학재단을 설립하는 게 어떨까?” 박태준 명예회장이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주택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됐고 이제 직원 자녀들의 교육문제가 가장 중요한 사원복지 문제로 떠올라 있었다. 모두들 동의했다. 박태준 명예회장은 당장 재단을 설립해 등록시킬 것을 지시했다. 1971년 1월 27일, 재단법인 제철장학회가 설립됐다. 거액의 리베이트를 모든 직원과 함께 나누게 된 셈이었다. 제철장학회는 직원 자녀(2명까지)의 학자금(대학 등록금까지)을 지원해왔다. 또한 산학협동과 직원들의 문화활동을 적극 후원하고 있다. 한편 리베이트의 존재를 알게 된 박 대통령은 국영기업체들의 임원을 불러 리베이트에 대해 따져 물었다. 한바탕 소동을 치른 국영기업들은 문제의 발단이 박태준 명예회장에게서 비롯됐음을 알게 됐다. 가뜩이나 미운 털이 박혀 있던 박태준 명예회장은 이들의 음모로 중앙정보부의 조사를 받는 등 곤욕을 치렀지만, 아무것도 문제되지 않았다. 오히려 박태준 명예회장의 청렴을 증명하는 것으로 이 사건은 일단락을 맺었다.불량 콘크리트를 폭파하라 박태준 명예회장은 완벽주의자였다. 허술한 점이 하나라도 발견되면 아무리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제대로 될 때까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1977년 여름, 포항 3기 건설공사가 한창이었다. 박태준 명예회장은 이틀이 멀다 하고 현장을 찾아 꼼꼼하게 이곳저곳 둘러보며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사항을 지시하곤 했다. 8월 1일 오후, 박태준 명예회장의 승용차가 나타났다. 현장의 건설요원들은 또 한 번 바짝 긴장했다. 발전송풍설비 현장을 돌아보던 박태준 명예회장이 전기실 앞에 멈춰 섰다. 뒤따르던 감독과 슈퍼바이저 무라카미도 함께 멈췄다. 전기실 앞쪽의 철골조 T.C.볼트가 잘 맞지 않아 가볼트 몇 개만 채워 붙여놓은 곳이었다. 박태준 명예회장은 한참 서서 바라보고 있었다. “저게 뭐야?” 지휘봉으로 그곳을 가리켰다. 감독은 가볼트를 채워둔 것이라고 대답했다. 시공회사와 슈퍼바이저의 합의에 따라, 암반까지 파일을 박지 않은 상태에서 겉으로 나와 있는 파일의 길이만 맞춘 채 시공을 계속했던 것이다. 박태준 명예회장은 격노해 건축소장을 불렀다. 박태준 명예회장은 대뜸 소장의 정강이부터 걷어찼다. “네가 소장이야? 너 뭐 하는 놈이야!” 상황이 심각했다. 다음은 감독 차례였다. “야! 너 학교 어디 나왔어? 너를 지도한 교수는 콘크리트를 저렇게 치라고 가르치더냐?” 그러고는 일본인 슈퍼바이저를 향해 돌아섰다. 한국말과 일본말이 뒤범벅된 질책을 쏟아부었다. 한동안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박태준 명예회장이 입을 열었다.“이 콘크리트 당장 폭파해!”주변의 건설요원들은 서로 얼굴을 바라봤다. 귀를 의심했다. 이미 기초공사는 80% 이상 진척된 상태였다. 폭파라니…. “폭파하고 다시 해! 이렇게 불량하게 제철소를 지어 놓으면 쇳물이 제대로 나올 것 같아?”박태준 명예회장은 대답도 듣지 않은 채 콘크리트 굴뚝 속으로 들어가 그곳의 타설 상태도 점검했다. 모든 기초공사 상황을 점검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러고는 아무 말 없이 현장을 떠났다. 그날 밤, 포항 건설 현장은 온통 북새통이었다. 형산강 석산 현장에서 폭약을 구해오고 포항경찰서에 폭파허가를 받는가 하면 폭약을 장전하고 폭파기사를 대기시켰다. 8월 2일, 박태준 명예회장은 포항제철소 내 건설부문 현장소장과 부서장들을 모두 집합시켜 폭파 현장을 견학하도록 했다. 오전 11시. 수많은 인파가 모인 가운데 폭파식이 거행됐다. 쾅! 하는 굉음과 함께 모래와 콘크리트가 뒤엉켜 치솟았다. 부실공사는 절대 허용할 수 없다는 박태준 명예회장의 단호한 의지를 공표하는 순간이었다.▶ 부실공사는 절대 허용할 수 없다며 박태준 명예회장은 80% 이상 공사가 진행된 발전송풍설비 콘크리트 구조물을 폭파시켰다.(1977.8.2)브로커의 농간과 가택수색 1974년 가을 아침, 아이들만이 남아 있던 박태준 명예회장의 서울 집을 사복형사 두 명이 수색영장을 들고 들이닥치는 사건이 발생했다. 물론 그들이 찾아낸 것은 집문서와 패물, 출장 중 쓰고 남은 외화 몇 푼이 전부였다. 이 사건의 자초지종을 살펴보면 국제 설비 브로커까지 개입한 엄청난 음모가 숨어 있었다. 제철소 프로젝트와 같은 큰 공사의 경우 막대한 이윤을 놓고 치열한 다툼이 생기기 마련이고, 박태준 명예회장의 가택수색 사건은 그 파장이었다.당시만 해도 연속주조 설비는 개발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오스트리아의 푀스트, 스위스 콩캐스트, 독일의 만데스만데마그 등 3개사만이 공급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3개 업체가 참가한 입찰 결과, 치열한 경쟁을 거쳐 푀스트로 낙찰되었다. 같은 해 11월 26일에는 푀스트를 설비 공급자로 지정하고 12월 11일 계약을 체결했다. 그런데 입찰에 참여했던 콩캐스트가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콩캐스트의 배후에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악명 높은 국제 거간꾼 E가 있었다. 그는 콩캐스트를 부추겨 막강한 국내외 고위관료들과 함께 작전을 개시했다. 정부 요처에 로비활동을 펴는 한편, 중앙정보부와 감사원에 “푀스트보다 싸게 설비를 공급할 수 있다”는 진정서를 돌렸다. 결국 박태준 명예회장은 물론 회사 경영진이 가택수색을 받기에 이르렀다.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한 채 수사는 종결되었고 뒤늦게 자초지종을 파악한 박정희 대통령이 관련자들을 처리하는 선에서 이 사건은 끝을 맺었지만, 박태준 명예회장에 대한 정치권의 질시와 견제는 그 이후로도 계속되었다.청결론과 사보기자 박태준 명예회장은 어린 시절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목욕을 하는 등 청결에 아주 민감했다. 당시 우리나라 생활환경 조건에 비추어보자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박태준 명예회장에게 ‘청결’은 습관 이상이었다. 삶을 꾸려나가는 하나의 가치였다. 1974년의 일이다. 박태준 명예회장은 특이한 지시를 내렸다. “모든 사원의 부인들은 반드시 목욕을 하라.” 부인이 깨끗해야 남편이 깨끗하고, 남편이 깨끗해야 공장이 깨끗하고, 공장이 깨끗해야 좋은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대부분은 대수롭지 않게 지시를 받아들였지만, 일부 사원 부인들은 “우린 목욕도 안 하고 사는 줄 아느냐”며 항의를 했다. 사원들 역시 쑥덕거렸다. 한동안 이 문제는 포항제철소의 화젯거리였다. 그해 연말, 사보 <쇳물>은 ‘올해의 가장 좋은 것과 나쁜 것’이라는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여기서 부인 목욕령은 세 번째 나쁜 사건으로 뽑혔다. 그리고 목욕령을 풍자하는 기사도 함께 실렸다. 아무도 큰 문제가 벌어지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박태준 명예회장은 그냥 넘길 수 없었다. 자신의 뜻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음을 깨달은 것이다. 박태준 명예회장은 기사를 쓴 홍보실 직원을 임원회의에 참석시켜 큰 소리로 그 기사를 읽게 했다. 직원은 떨리는 목소리로 기사를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사장의 철학을 비판할 생각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결국 사장의 의중을 파악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라는 내용이었다. 가만히 듣고 있던 박태준 명예회장은 젊은 직원의 용기와 솔직함을 칭찬했다. 그러고는 그를 자신의 방으로 불러 몇 시간 동안 ‘목욕철학’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전혀 의외의 일이었다. 이처럼 청결을 강조하고 실천한 덕분에, 포항제철소와 광양제철소는 세계 어느 제철소보다 깨끗하고 정돈된 작업환경을 갖출 수 있었다. 그의 지론처럼, 청결론은 좋은 품질을 생산하고 각종 산업재해를 줄이는 기초가 되었던 것이다. 이전글[포항 퇴직직원들과 19년 만의 재회 | 무슨 말 남겼나] “여러분과 함께 도전했던 세월은 가장 아름다운 날들이었습니다”다음글[박태준 연보] ‘짧은 인생을 영원 조국에’…철인은 멈추지 않는다목록포스코의 다양한 정보를 이메일로 쏙!뉴스레터 신청 포스코윤리경영제품/기술투자자정보지속가능성홍보채널인재채용그룹사 바로가기 열기그룹사 바로가기 닫기포스코 그룹사철강을 기반으로 소재, 에너지 분야의 글로벌 리더를 지향하는 포스코 그룹사를 소개합니다.그룹사를 클릭하면 선택 그룹사 홈페이지로 새창이동 합니다.철강포스코강판 포스코P&S SNNC 포스코AST 포스코TMC 포스하이메탈E&C포스코건설포스코플랜텍포스코A&C포스코엔지니어링무역대우인터내셔널ICT포스코ICT에너지포스코에너지포스코LED포스코그린가스텍소재·화학포스코켐텍포스코엠텍PNR포스코ESM지원포스메이트포스코터미날엔투비 포스코경영연구소 포스코기술투자 포스코휴먼스포스코인재창조원POSCO Group SNS 열기POSCO Group SNS 닫기포스코 그룹사 소셜 링크아래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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