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일의 칼날 위의 歷史] #34. 왕 내쫓기 위해 청나라에 뇌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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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인 1399년(정종 1년) 조카 혜제(惠帝)의 자리를 빼앗기 위해 수십만 군사를 일으켜 3년간에 걸친 치열한 내전 끝에 1402년(태종 2년) 제위에 오른 인물이었다. 영락제(永樂帝) 성조는 환관 정화(鄭和)에게 대함대를 주어 서양까지 가게 하고, 북방의 몽골과 남방의 안남(安南·베트남)을 정벌했던 명나라 유일의 정복 군주였다. 영락제는 1406년(태종 6년) 안남 정벌 사실을 조선에 알렸다. 통보 자체가 조선에는 큰 협박이었다. 태종은 안남 사태를 논의하는 조정 회의에서 “나는 한편으로는 (명나라를) 지성으로 섬기고, 한편으로는 성을 튼튼히 하고 군량을 저축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한다”(<태종실록> 7년 4월8일)라고 말했다. 명나라를 지성으로 사대하는 조공외교로 전쟁을 예방하겠다는 뜻이었다. ‘성을 튼튼히 하고 군량을 저축하겠다’는 것은 조공외교에만 의지하지 않고 전쟁 준비를 하고 있다가 여차할 경우 명나라와 결전도 불사하겠다는 뜻이었다. 태종이 상왕(上王) 시절 서울 남산에 산성을 쌓은 것은 명나라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태종의 사대외교는 전쟁이라는 발톱을 감춘 평화책이었다. 물론 명나라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4년 11월10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 Xinhua 연합 태종의 사대외교는 전쟁 발톱 감춘 평화책그러나 조선 후기 인조반정 이후의 사대외교는 이와 달랐다. 이른바 인조반정은 서인(西人)들이 광해군의 ‘명·청(明淸) 중립외교’를 상국인 명나라에 대한 배신으로 규정짓고 일으킨 쿠데타였다. 외교를 국익 실현의 수단이 아닌 이념으로 바라본 시대착오적인 쿠데타였다. 인조반정 이후 ‘숭명(崇明) 사대주의’는 국익 위의 이념으로 격상되었다. 인조 때 발생했던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은 서인 정권의 숭명 사대주의가 초래한 국난이었다. 어차피 조선이 중원의 주인공이 되지 못할 바에는 중원을 장악한 세력과 외교 관계를 수립해서 평화를 유지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광해군의 명·청 중립외교를 명나라에 대한 배신으로 규정하고 쿠데타를 일으킨 서인들은 급격한 친명 사대주의로 전환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에 대한 청나라의 대응이 정묘, 병자호란이었던 것이다. ‘삼전도의 굴욕’ 이후 인조와 서인 정권은 오랑캐라고 멸시했던 만주족의 청나라를 임금의 나라로 사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면서 겉과 속이 다른 이중적 외교정책을 수행했다. 겉으로는 청나라를 사대하면서 속으로는 이미 망한 명나라를 섬기는 이중적 외교정책이 그것이었다. 그 상징적인 표현이 ‘숭정 기원 후(崇禎紀元後)’라는 용어다. 숭정(崇禎)은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의종(毅宗·재위 1628~1644년)의 연호다. 의종은 1644년 농민군 이자성(李自成)이 북경(베이징)을 점령하자 자결했고, 이 혼란을 틈타 청나라는 만리장성의 동쪽 끝인 산해관(山海關)을 넘어서 북경을 점령했다. 청나라는 북경을 장악한 것을 기념해 순치(順治)라는 연호를 사용했는데, 조선의 유학자들은 청나라의 연호 사용을 거부하고 계속 숭정이란 연호를 고집했다. 공문서에는 청나라의 연호를 썼지만 묘비나 문집 같은 곳에는 숭정을 사용했다. 그런데 1644년으로 끝난 연호를 계속 사용하려니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144년 후인 정조 10년(1786·병오년)을 표기할 경우 ‘숭정 기원 후 세 번째 병오년’이라고 표기하는 식이었다. 청나라 연호를 사용한 관직 임명장을 받을 수 없다면서 관직을 거부하는 경우도 생겨났다. 숙종 때 마패에 명나라 연호를 사용했다가 문제가 생겼는데, 그나마 숭정이 아니라 천계(天啓)란 연호를 썼기 때문에 청나라 사신에게 뇌물을 주고 무마한 일까지 있었다. 천계는 명 희종(熹宗·재위 1621~1627년)의 연호로서 숭정 이전에 쓰던 것이기 때문에 망한 명나라를 계속 사대하는 것이 아니라고 변명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청나라 연호를 쓸 수 없다면서 벼슬을 거부하는 것은 겉과 속이 일치하는 경우에 속했다. 숙종 때 서인은 노론과 소론으로 갈라지는데, 서인의 주류인 노론은 끝까지 망한 명나라를 다시 세우겠다는 ‘춘추대의(春秋大義)’를 입에 달고 다녔다. 그러나 노론의 춘추대의는 국내 권력 장악을 위한 명분에 불과했다. 노론은 춘추대의를 주창하면서 국체를 보존하기 위해서 할 수 없이 청나라를 사대한다는 현실론을 내세웠다. 그러나 노론의 춘추대의라는 명분론도, 청나라를 사대한다는 현실론도 모두 국익이 아니라 당익(黨益)과 사익(私益)을 위한 것이었다. 심지어 조선 왕을 내쫓기 위해 청나라 조정에 뇌물까지 뿌렸다. 노론은 숙종 때 장희빈의 아들(경종)을 제거하기 위해 갖은 수단을 사용했지만 실패했다. 그래서 경종이 즉위하자 그를 내쫓고 자신들이 지지하는 경종의 이복동생 연잉군(영조)을 세우기 위해 또 온갖 수단을 다 동원했다. 경종 즉위년(1720년) 9월 포도대장 이홍술(李弘述)이 점술가인 육현(陸玄)을 곤장으로 장살(杖殺·사형 방법 중 하나로 때려죽이는 것)시킨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에 대해서 <경종실록> 사신(史臣)은 ‘육현이 영의정 김창집에게 음사(陰事)를 말해주었는데, 이를 누설할까 두려워서 이홍술을 시켜서 박살(撲殺·때려죽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때의 ‘음사(陰事)’란 경종을 모해하려는 역모라는 사실이 나중에 밝혀지기도 했다. 두 달 후인 11월 숙종의 치제(致祭·제사)를 위해 온 청나라 사신이 “세자(새 임금 경종)의 아우(연잉군) 등을 만나보겠다”고 요구해서 정국에 큰 소동이 인 것도 같은 사건의 연장선이었다. 소론 우의정 조태구가 “청나라 사신이 세자의 동생을 면담할 이유가 없고 전례도 없다”고 반대했지만, 노론 영의정 김창집은 연잉군의 신상에 관한 자료를 제공했다. “조선국 세자(경종)는 금년에 33세인데 자녀가 없고, 동생이 있는데 금년 27세로서 군수 서종제(徐宗悌)의 딸을 아내로 삼았는데, 그 모친은 최씨이고 현재 자녀가 없다.”(<경종실록> 즉위년 11월28일) 국익 위해 태종식 외교정책으로 전환해야김창집이 청나라 사신에게 경종 동생의 신상 자료를 제공한 것에 대해 <경종실록>의 사신은 ‘임금의 동생에 관한 이야기는 공식 문서에 없었는데도, 김창집이 임금에게 묻지도 않고 독단으로 써주었다’고 비판하면서 “김창집은 수상(首相)의 몸으로 국가에 욕을 끼치고 저들에게 수모를 당한 것이 이에 이르렀으니, <춘추(春秋)>의 법으로 논한다면 그 죄는 죽여야 마땅하지 않겠는가?”(<경종실록> 즉위년 11월28일)라고 성토했다. 그런데 사실 청나라가 연잉군의 신상 자료를 요구한 데는 까닭이 있었다. <경종실록> 사신(史臣)은 “혹자는 ‘이이명이 사신으로 갈 때 은화(銀貨)를 많이 가지고 가서 저 나라에 뇌물을 주었다’고 말한다”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이이명이 청나라 요로에 막대한 뇌물을 써서 자신들이 국왕으로 삼으려는 인물은 경종이 아니라 그 동생(연잉군)이라고 로비했다는 것이다. 마음속으로는 청나라를 인정하지 않는다던 노론은 자국의 임금을 내쫓기 위해서 청나라 요로에 막대한 뇌물까지 뿌렸다. 망한 명나라를 되살린다는 춘추대의도, 할 수 없이 청나라를 상대한다는 현실론도 모두 당익과 사익 추구 수단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조선 초기 태종의 사대외교가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었다면 조선 후기 노론의 사대주의는 당익과 사익을 위한 명분론에 불과했다. 노론의 마지막 당수가 이완용인 데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내부 권력 유지에 모든 초점을 맞췄던 노론은 끝내 일본에 나라를 팔아넘기는 매국 행위를 자행했다. 그 대가로 일제 강점기에도 권력을 유지했고, 해방 후에도 친일 청산이 좌절되면서 일정 부분 세력을 유지했다. 지금 대한민국의 외교가 국민들에게 신뢰를 받지 못하는 근본 원인은 국익과 특정 집단의 이익을 혼동하기 때문이다. ‘냉전 시대’와 ‘팍스 아메리카나 시대’에는 무조건 미국 뜻을 추종하는 숭미 사대주의가 국익과 일치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중국이 성장해 G2로 발돋움하고 있으며 러시아도 재부상하고 있는 다원화 시대라는 상황 변화 외에도, 대한민국 자체가 타국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기에는 국력이 크게 신장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대한민국은 국익 실현을 위해 수단을 선택했던 태종식 외교정책으로 전환할 때가 되었다. 이덕일│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입력시간 : 2015-04-23 17:41:17<저작권자 © 시사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메일보내기인쇄하기트윗하기icon인기기사"조현오 전 경찰청장, 검찰이 표적수사했다"[인터뷰] 김종이 현대중 협력사대책위 본부장 “괘씸한 현대중 고발한다”롯데의 운명 가를 세 여인의 시선을 주목하라[MWC2016] LG G5 써보니...VR 연결로 보는 재미 강화해"삼성엔지니어링 유상증자해도 해외프로젝트 실적 확인 필요""조현오 전 경찰청장, 검찰이 표적수사했다"여백여백“대견한 내 새끼~”여백여백여백Science | 백제의 ‘구구단’이 일본으로 전파됐다New Book | [New Books] 식탁 위의 세상Book |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어도 온전하게 사랑할 수는 있다”시사& | '또라이' 데드풀이 올해 히어로 라인업 선봉에 서다시사& | 레알의 레전드, 명장으로 거듭나다시사& | “대장금2 출연할 용의 있다”시사& | ‘먹어줘야 할’타이밍에 명절이 있다TV | ‘막장’ 홍수 시대에 더욱 기대되는 ‘가족’이란 카드New Book | New BooksBook | “향후 5년 ‘大위기’ 그러나 곧 ‘大기회’이기도”여백여백여백여백여백1[단독] “새누리당 의원 ‘최소’ 3명, 강원랜드에 대규모 인사 청탁”2"조현오 전 경찰청장, 검찰이 표적수사했다"3“일감 없는 현대중공업에 물량팀만 죽어납니다”4[인터뷰] 김종이 현대중 협력사대책위 본부장 “괘씸한 현대중 고발한다”5롯데의 운명 가를 세 여인의 시선을 주목하라6[MWC2016] LG G5 써보니...VR 연결로 보는 재미 강화해7월급 200만원 직장인 '똑똑한 재테크'8개성공단 중단으로 김정은 돈줄 죌 수 있을까9후보자의 이미지만 보고 투표하지 마라10"삼성엔지니어링 유상증자해도 해외프로젝트 실적 확인 필요"팔로우icon 페이스북icon 트위터icon 판터레스트icon 텀블러icon 애플스토어icon 구글플레이ic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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